용인송담대학교 건축소방설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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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게으름

작성자 서병택 작성일 2021-04-16
조회수 51회 댓글 0

본문

문요한 지음
굿바이, 게으름
 :게으름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 10가지 열쇠, 개정판
(주)더난콘텐츠그룹
초판1쇄 발행 2007. 2. 20. 개정1판19쇄 발행 2015. 2. 17.

삶의 방향은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삶에서의 성공은 자신의 독특함과 대면할 때만 찾아옵니다. 자신의 본성과 강점에 부합된 소망만이 지속적인 힘을 줍니다. 그럴 때만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도움을 받게 됩니다. 자기로 살아갈 때만 성공과 행복은 하나가 됩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성공 경험이나 책인 레퍼런스이지 매뉴얼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늘 함께한다. 삶이란 가능성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 삶을 뒤흔드는 내면의 목소리와 마주하게 된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이게 나의 전부인가?’라고 묻는다.
나는 이 책을 그린 내면의 물음과 마주한 사람들을 위해 썼다.

나는 인간은 끊임없이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속성을 지녔다고 믿는다. 물론 주위를 둘러보면 변화에 도전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 부딪히면서 꺾이고 뒤틀린 모습일 뿐이다.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도 부상을 당하면 슬럼프에 빠진다.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되는 재활훈련을 통해 재기에 성공하고, 누군가는 슬럼프에서 영영 헤어나오지 못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간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게으름을 판단할 때는 ‘삶에 방향성이 있는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게으름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태도, 즉 능동성에 의해 구분된다. 아무런 물음이나 생각 없이 반복적인 일상을 바쁘게 사는 것도 삶에 대한 근본적인 게으름이다. 반면, 움직임 없이 쉬고 있더라도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기고 있다면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마음과 행위가 유리될 때 우리는 게으른 것이다.

오늘과 내일은 연결할 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게으르지 않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들에게 내일은 오늘의 반복일 뿐이다.

능동적인 선택이야말로 삶에 지향성을 부여한다.

게으름은 마지못해 선택했거나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결정 미루기, 떠넘기기, 선택의 폭 조절하기. 이는 가장 대표적인 게으름의 양상인 동시에 게으름을 유발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더 큰 기쁨을 위해 지금 당장의 작은 기쁨을 미루기가 쉽지 않다. 즉각적인 만족과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불편함’을 견디는 법을 배워나간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을 배운다.

성인들도 삶에 재미가 없으면, 즉 사랑이나 인정이나 성취를 얻지 못하면 어린아이와 같이 ‘즉각적인 만족’과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행위가 중독이다.

선택의 기회가 많다는 말은 곧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기회가 주는 보상은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기에 그만큼 후회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우리는 결국 최상의 선택을 하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선택은 미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왜 게을러지는가? 그것은 바로 포기와 좌절 때문이다. 재도전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안과 밖의 제약이 우리를 게으르게 만드는 것이다.

‘재능과 강점을 바탕으로 자신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게으름에서 벗어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게으름에서 벗어나려면 내적 동기를 우선적으로 지녀야 한다. 내적 동기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이미 에너지 발전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모든 실질적 변화는 인식의 상위 수준인 각성에서 시작된다. 사실만으로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게으르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담배나 술이 해롭다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듣고 살아왔는가! 중요한 것은 ‘각성’이다.

사회는 이제 더 이상 ‘근면’과 ‘성실’을 원하지 않는다. ‘창의적 정신’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측정하려 든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삶의 방향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획일화된 조직인간’에서 벗어나 ‘창의적 개인’으로 살아가려는 욕구가 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충만한 삶이다. 충만한 삶은 억지에서 벗어나 순리를 따를 때 비로소 가능하다. 개인의 삶에서 순리란 ‘자기로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서 게으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죽음과 가까워지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가 명백해진다.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만이 자신의 게으름을 인정한다.

문제를 벗어나는 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행하다면 불행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게으르다면 게으르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문제에 부딪히면 문제에 매몰되어 문제에서 벗어나는 데만 급급하기 쉽다. 그게 어떤 일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왜 해야 하는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니체는 그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태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해법은 단기적인 목표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의식을 찾는 것이다.

비전은 ‘자신만의 독특하고 생생한 미래상’을 의미한다. 꿈이나 목적을 현실과 연결시키는 가교인 셈이다. 그렇기에 비전은 종이에 쓰기 전에 먼저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생생한 비전이나 구체적 목표만큼이나 어떻게 그곳까지 갈 수 있는지 방법을 찾고 전략을 세우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현재와 원하는 미래 사이에 자신의 실행능력에 맞는 디딤돌이 놓여 있지 않는다면 비전은 오래지 않아 힘을 잃기 쉽다.

비전과 목표로 향하는 길에 엘리베이터는 없다. 한 계단 한 계단 전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는 늘 구체적이고, 시간제한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한다.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변화를 위해서는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방향은 두 점에 필요합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가 한 점(A)이라면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가 또 다른 한 점(B)이 될 것입니다. A는 현재고 B는 미래입니다. 이 두 점을 연결하면 바로 방향이 됩니다.

문제는 자신이 원하는 지점을 설정하는 것이 쉽지 않고, 또 현재 자신의 삶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두 점 사이를 바로 갈 수 없기 때문에 그 사이에 디딤돌처럼 작은 돌들을 찍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누구나 인간으로서 가진 보편적 가치는 동일하다.

두려움만 있고 설렘이 없다면 그것은 비전이 아닙니다.

절대 첫 시도에 무리해서는 안 된다. 마치 첫 걸음을 뗀 아이처럼 나아가야 한다. 오늘 한 걸음을 걸었으면 그 다음은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두 걸음을 걷는 것이다.

보다 발전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말 그대로 발전적인 사라들과 환경에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연결이 많아질수록 당신의 긍정 에너지 수위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사명과 비전에 따라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래에서 오늘을 바라보며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상기 해봅니다. 구체적으로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합니다. 중요도에 따라 일을 구분하여 할 일 목록을 적어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떠올려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고민해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능동적으로 선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우리는 선택을 하면서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점점 알아가고 만들어간다.

책임은 선택을 할 때도 주어지지만 선택을 하지 않을 때에도 주어진다. 즉, 자신을 미루고 회피한 것 역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최상의 선택을 위해 애쓰지 말고 최선의 결과를 위해 노력하라.

휴식recreation이라는 말에는 창조creation라는 말이 들어 있다. 즉, 휴식이란 새로운 무엇을 준비하고 만들어내는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삶의 가장 큰 효율성은 ‘몰입’에서 나온다.

행복은 길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어야지 목표에 도달한 뒤 받는 트로피가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이 만일 목표라면 그곳에 도달하기 전의 삶은 불행으로 물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씨앗인 채도 세상에 태어났다. 삶이란 우리가 갖고 태어난 씨앗들을 가꾸고 키워서 꽃을 피우고 다시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으로 나아가라. 그 자리에서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하나의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너로서 살아가라!’